류현진의 주장에 KBO가 자료를 공개하며 반박했다. 기계는 정확했다는 것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4월 26일 한화 이글스 류현진의 주장에 반박하는 ABS(자동투구판정시스템) 자료를 공개했다.
류현진은 지난 24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 경기에서 부진했다. 선발등판해 KBO리그 통산 100승에 도전했지만 5이닝 7실점(5자책)으로 부진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KBO리그 복귀 후 두 번째로 많은 실점을 기록했다.
이날 류현진의 패인은 한화의 내야 수비 불안. 한화 내야진은 실책과 실책성 플레이를 남발하며 류현진을 전혀 돕지 못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ABS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경기 중에도 수차례 ABS 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류현진은 25일에는 취재진을 만나 ABS 존이 경기마다 다르다고 주장했다. 자신보다 하루 먼저(23일) 등판한 문동주에게 적용된 ABS 존과 자신에게 적용된 존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한화 최원호 감독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KBO의 입장은 다르다. KBO는 류현진이 특히 불만을 표출한 공들에 대한 ABS 자료를 공개해 반박했다. 판정에는 이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류현진은 KT 위즈파크의 ABS 존이 우타자 몸쪽(좌타자 바깥쪽)에 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회 좌타자 천성호에게 바깥쪽 공을 던졌다. 하지만 볼 판정을 받았다.
KBO가 제공한 데이터에 따르면 23일 문동주가 천성호를 상대로 바깥쪽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아낸 4회 4구 시속 145km 직구는 ABS 존 정중앙으로부터 바깥쪽으로 22.60cm 떨어진 지점을 통과했다. 그리고 류현진이 24일 1회 던진 3구 시속 136km 직구는 바깥쪽으로 29.60cm 떨어진 지점을 통과했다. 문동주의 공보다 7cm나 바깥쪽으로 빠진 공이었다.
투구 위치는 공의 중심점이 기준. 그리고 ABS 존에 공이 스치기만 해도 스트라이크다. ABS 존의 좌우 넓이는 홈플레이트 크기 43.18cm에 좌우 2cm씩을 더한 47.18cm. 좌우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ABS 존 중심으로부터 이를 절반으로 나눈 21.59cm에 추가 2cm, 여기에 공의 반지름 3.615cm를 더한 '27.205cm' 이하의 거리 내에 공이 들어와야 한다. 문동주의 공은 22.60cm가 떨어져 ABS 존을 통과했지만 류현진의 공은 ABS 존보다 2cm 이상 벗어났기에 볼이 선언됐다.
류현진은 3회 선두타자 조용호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존에 불만을 표시했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낮은 볼이 선언된 3구 시속 140km 직구. 중계화면으로는 스트라이크 존에 스친 것처럼 보였지만 판정은 볼이었다.
KBO 제공 데이터에 따르면 이 공은 '낙차'가 문제였다. ABS 존은 좌우로는 하나의 면 뿐이지만 상하는 두 개의 면을 갖고 있다. '중간면'과 '끝면'을 모두 통과해야 스트라이크로 판정된다. 이 때문에 낙차가 큰 낮은 공의 경우 스트라이크 콜을 받을 확률이 떨어진다. 높은 쪽의 스트라이크는 중간면만 통과하면 끝면을 당연히 통과하게 되지만 낮은 쪽의 경우 중간면을 통과하더라도 끝면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신 끝면은 중간면보다 기준이 1.5cm 낮아진다.
ABS 상하 존은 타자의 키가 기준이다. 존 하단은 지면으로부터 키의 27.64% 높이, 상단은 키의 56.35% 높이에 위치한다. KBO 제공 자료에 따르면 조용호의 ABS 상하 존은 중간면 하단이 지면으로부터 47.76cm가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여기에 '스치면 스트라이크'임을 적용하면 공의 반지름(3.615cm)을 뺀 44.15cm 지점보다 높은 곳을 공이 통과해야 스트라이크다. 끝면 하단은 1.5cm 낮아진 46.26cm 지점. 여기에 공의 반지름을 빼면 42.65cm 지점이다.
류현진이 던진 공은 44.30cm 높이로 중간면을 통과했다. 44.15cm보다 높았으니 ABS 존을 통과한 것. 하지만 끝면을 아쉽게 통과하지 못했다. 류현진의 직구는 41.87cm 높이로 끝면 기준점(42.65cm)보다 단 0.78cm가 낮았다. 채 1cm도 되지 않는 차이로 볼이 선언된 것이었다. 육안으로는 스트라이크처럼 보였지만 기계의 정밀한 판단은 볼이었던 것이다.
조용호는 KBO 프로필에 키가 170cm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조용호에 적용된 ABS 존은 키 '172.8cm'였다. 이는 프로필에 기재된 키와 KBO가 ABS 시스템 도입을 위해 실시한 측정값이 달라 발생한 차이. KBO 관계자는 "프로필에 기재된 키와 실제로 측정한 키가 다른 선수가 굉장히 많았다"고 밝혔다. ABS 도입을 위해 실제로 측정한 조용호의 키는 172.8cm였던 셈이다. 프로필 상의 키인 170cm가 기준이었다면 류현진의 공은 끝면 기준점까지 통과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새로 측정한 키는 그보다 컸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제구력의 달인'으로 손꼽혔던 류현진은 사실 '후한 스트라이크 존'에 익숙한 투수였다. 메이저리그 시절 '보더라인을 가지고 노는' 피칭으로 유명했던 류현진은 스트라이크 존 경계를 공략하는 특유의 제구력과 프레이밍 능력이 좋은 포수들의 활약으로 존을 살짝 벗어난 공에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람인 심판이 자신의 경험과 직감으로 스트라이크 여부를 판단하던 기존 방식에서는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라는 인식에 뛰어난 프레이밍까지 더해지면 볼이 스트라이크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 KBO리그는 '감'이 아닌 '기계의 정밀 측정' 시대에 접어들었다. 정확하게 '핀포인트 제구'가 된 공도, 손에서 빠진 공이나 반대투구가 된 공도 기계가 측정하는 기준에만 부합하면 스트라이크다. 어떤 투수가 던졌는지, 포수가 소위 '미트질'을 했는지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경기를 치르는 양 팀에 완전히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면 공정성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KBO가 기계가 정확하게 측정한 자료를 공개하며 정면으로 반박한 만큼 이번 사건은 ABS 시스템의 정확성을 다시 한 번 알리는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사진=위부터 류현진/뉴스엔DB, KBO 제공 ABS 데이터)